Summary
직무급과 연공급을 둘러싼 논쟁은 오래됐지만, 질문 자체가 잘못 설정된 경우가 많다.
어느 것이 더 공정한가, 어느 것이 더 효율적인가를 묻는 순간, 두 제도는 서로 배타적인 선택지로 고정된다.
그러나 현실의 보상 체계는 이 이분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직무급과 연공급은 각각 다른 조직 맥락에서 다른 기능을 수행하며,
어느 쪽이 정답인가라는 질문보다 어떤 조합이 우리 조직의 전략과 문화에 맞는가를 묻는 것이 실무적으로 훨씬 유효하다.
필요성
직무급 전환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연공급이 성과와 무관한 보상을 양산하고 인건비 구조를 경직시킨다는 비판은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고, 정부 차원의 직무급 도입 권고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직무급 전환에 성공한 기업의 수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직무급을 도입했지만 운영 과정에서 연공급으로 회귀하거나 직무급이라는 이름을 달고 실질은 연공급으로 작동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 현상을 단순히 변화 저항이나 실행력 부족으로 설명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직무급과 연공급이 각각 다른 조직 조건에서 다른 방식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Deloitte의 2025 Global Human Capital Trends가 지적하듯, 인사 설계에서 발생하는 많은 긴장 관계는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맥락에 맞는 균형점을 찾는 문제다.
연공급은 장기 고용을 전제로 구성원의 헌신을 유도하고 조직 내 협력을 촉진하는 기능을 한다.
직무 간 이동이 적고 숙련이 내부에서 축적되는 조직, 특히 제조업 생산 현장처럼 장기 근속자의 암묵적 노하우가 핵심 경쟁력인 환경에서 연공급은 나름의 합리성을 가진다.
반면 직무급은 역할과 기여에 따른 보상 차별화를 통해 성과 동기를 높이고, 외부 노동시장과의 임금 정합성을 확보하는 데 강점이 있다.
직무 간 이동이 활발하고 전문성의 시장 가치가 보상에 직접 반영되어야 하는 환경에서 직무급은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조직이 이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장기 근속 생산직과 전문성 기반 연구직이 한 조직 안에 공존하고, 내부 협력이 중요한 팀과 외부 시장 대응이 핵심인 팀이 함께 존재한다.
이 복합적인 조건에 단일 보상 철학을 강요하면 어느 한쪽에서는 반드시 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발생한다.
기업에서 흔히 하는 실수
첫째, 직무급 전환을 연공급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연공급의 비효율이 누적되어 인건비 부담이 커지거나 고성과자 이탈이 발생하면, 직무급이 그 해법으로 제시된다.
이 프레임 안에서 직무급은 연공급을 대체하는 제도가 되고 두 제도는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연공급의 문제를 직무급으로 해결하려 하면 연공급이 수행하던 기능, 즉 장기 헌신 유도와 내부 협력 촉진이 보상 체계에서 사라진다.
그 공백은 결국 다른 방식으로 메워져야 하는데 이를 설계하지 않은 채 직무급으로 전환한 조직은 고성과자 동기는 높아졌지만 조직 내 협력과 지식 공유가 줄어드는 부작용을 경험한다.
둘째, 외부 사례를 그대로 이식하는 것이다.
직무급 도입에 성공한 기업의 사례는 늘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그 성공은 해당 기업의 산업 특성, 인력 구조, 노사 관계, 조직 문화라는 맥락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맥락이 다른 조직에 제도만 이식하면 제도는 형식적으로 존재하지만 의도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실무 적용 포인트
① 직무급과 연공급을 대립으로 보지 말고, 각각의 기능을 보상 체계 안에서 재배분하라
직무급과 연공급은 배타적 선택지가 아니라 보상 체계 안에서 서로 다른 기능을 담당하는 요소로 볼 수 있다.
직무급은 역할의 가치와 외부 시장 정합성을 반영하는 기능을 하고, 연공 요소는 조직 내 장기 헌신과 누적된 경험의 가치를 반영하는 기능을 한다.
두 기능이 모두 필요한 조직이라면 어느 하나를 완전히 제거하기보다 보상 체계 안에서 두 요소의 비중과 역할을 재설계하는 접근이 현실적이다.
기본급의 상당 부분을 직무 가치로 설계하되 근속에 따른 누적 보상은 별도의 항목으로 제한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이 그 예다.
중요한 것은 각 요소가 왜 존재하는지, 어떤 행동을 유도하기 위한 것인지를 설계 단계에서 명확히 하는 것이다.
② 직무군과 고용 형태에 따라 보상 철학을 차별화하라
단일 보상 철학을 전사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어딘가에서는 반드시 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생긴다.
장기 근속이 핵심 경쟁력인 생산직과 전문성의 시장 가치가 중요한 연구직에 동일한 보상 철학을 적용하면 어느 쪽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직무군별로 보상 철학의 무게중심을 다르게 설정하는 것이 실무적으로 타당하다.
생산직은 숙련 축적과 장기 헌신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연공 요소의 비중을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하고,
연구직과 전문직은 직무 가치와 시장 정합성을 중심으로 설계하며,
영업직은 성과 연동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직무군별 보상 설계의 무게중심을 달리하는 것이 현실을 반영한 접근이다.
③ 전환의 속도와 범위를 조직의 변화 수용력에 맞게 설계하라
연공급에서 직무급으로의 전환은 보상 체계의 변화인 동시에 조직 문화의 변화다.
오랫동안 연공급 체계에서 일해온 구성원들에게 직무급은 단순히 임금 계산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경력에 대한 기대와 조직에 대한 심리적 계약의 변화로 받아들여진다.
이 변화를 단기간에 전면적으로 추진하면 저항이 커지고, 저항을 관리하는 데 소진되는 에너지가 제도 설계의 품질을 떨어뜨린다.
신규 입사자부터 직무급을 적용하고 기존 구성원은 단계적으로 전환하는 방식,
또는 특정 직무군이나 사업부에 먼저 시범 적용하는 방식 등 전환의 속도와 범위를 조직의 변화 수용력에 맞게 설계해야 한다.
제도의 완성도보다 구성원의 수용성이 전환의 성패를 먼저 결정한다.
④ 보상 체계가 유도하는 행동이 전략 방향과 일치하는지를 설계의 기준으로 삼아라
직무급이 맞는가 연공급이 맞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잘못된 질문이다. 올바른 질문은 현재 보상 체계가 조직이 원하는 행동을 유도하고 있는가다.
장기적 관점의 기술 개발과 내부 협력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조직이라면 연공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전략과 어긋난다.
반면 빠른 역할 전환과 외부 전문성 영입이 중요한 조직이라면 연공 요소의 비중을 줄이는 것이 맞다.
보상 체계는 조직이 구성원에게 보내는 가장 강력한 신호다.
어떤 행동에 보상을 줄 것인가를 먼저 정의하고, 그 행동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직무급과 연공 요소의 비중을 설계하는 것이 이분법을 넘어서는 접근이다.
맺음말
직무급과 연공급 중 무엇이 정답인가라는 질문에는 답이 없다. 정확하게는 그 질문 자체가 정답을 가질 수 없는 구조로 설정되어 있다.
보상 체계는 조직의 전략, 인력 구조, 문화, 노사 관계라는 맥락 위에서 설계되어야 하고, 그 맥락은 조직마다 다르다.
HR이 해야 할 일은 두 제도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조직이 어떤 행동을 유도해야 하는가를 먼저 정의하고,
그 방향에 맞게 두 요소를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를 설계하는 것이다. 보상 체계의 정답은 제도의 이름이 아니라 설계의 논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