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호, 제257호
나인표 나킴컨설팅 대표
기업은 오랫동안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고민해 왔다. 누군가는 오래 근무했고, 누군가는 높은 성과를 냈으며, 또 누군가는 조직에 꼭 필요한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 무엇을 기준으로 보상해야 할까.
과거에는 연공과 근속이 중요한 기준이었다. 일정 기간 조직에 기여하고 경험을 축적한 구성원에게 더 높은 보상을 제공하는 방식은 산업화 시대 조직 운영에 효과적이었다. 안정적인 인력 운영과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데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오늘날 기업이 마주한 환경은 다르다. AI와 디지털 전환은 직무 자체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으며, 산업 간 경계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동시에 인구구조 변화와 인재 부족 현상은 기업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이제 기업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보유하고 있는가보다 어떤 역량을 가진 사람을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임금체계 역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더 이상 같은 직급, 같은 근속연수만으로는 구성원의 기여와 시장가치를 설명하기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용노동부의 ‘업종별 임금체계 개선 확산 지원사업’이 출발한다. 이 사업은 업종 특성을 반영한 표준임금체계를 개발하고 현장에 확산함으로써 기업이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보상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대기업보다 중소·중견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미 상당수 대기업은 직무체계와 성과관리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지만, 많은 중소·중견기업은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전문 인력과 경험 부족으로 인해 변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직무분석, 직무평가, 시장임금 분석, 성과급 설계와 같은 HR 전문 영역은 기업이 자체적으로 추진하기 쉽지 않은 과제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바이오와 석유화학 산업을 대상으로 업종별 표준임금체계를 개발하고 글로벌 HR 컨설팅 전문기관인 Korn Ferry와 산업 현장 경험이 풍부한 나킴컨설팅을 운영기관으로 선정해 실질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연공 중심 보상은 왜 한계에 부딪히는가
기업들이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순히 정부 정책 때문이 아니다. 실제 현장에서 가장 크게 제기되는 문제는 보상과 기여의 연결성이다. 같은 직급 안에서도 수행하는 역할과 책임 수준은 크게 다르다. 시장에서 요구되는 전문성의 희소성 역시 차이가 난다.
그러나 연공 중심 체계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 특히 핵심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이러한 문제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기업은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정작 기존 임금체계 안에서는 이를 제도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예외적 처우가 반복되고 이는 다시 보상 공정성 논란으로 이어진다.
직무와 성과 중심 보상체계가 주목받는 이유는 결국 여기에 있다. 사람의 가치와 보상의 연결고리를 보다 명확하게 만들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업종이 다르면 보상의 기준도 달라야 한다
직무 중심 보상이라고 해서 모든 산업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 이번 사업이 바이오와 석유화학 산업을 대상으로 추진되는 이유도 산업별 특성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바이오 산업은 연구개발 중심 산업이다. 신약 개발과 기술 상용화는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며 성과가 사업화로 연결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연구개발 인력의 전문성과 프로젝트 기여도를 적절히 인정하고 보상하는 체계가 중요하다. 반면 석유화학 산업은 생산성과 공정 안정성이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생산 현장의 숙련도와 기술 역량, 안전관리 수준이 기업 성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직무 특성과 역할에 따른 차별화된 보상체계가 요구된다.
결국 같은 직무 중심 보상이라 하더라도 어떤 산업에서는 연구 성과와 전문성이 중요하고, 또 다른 산업에서는 생산성과 기술 숙련도가 핵심 기준이 된다. 표준임금체계는 이러한 차이를 반영해 산업별 보상 원칙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직무와 성과를 연결하는 새로운 설계
이번 표준임금체계의 핵심은 직무가치와 성과를 보상의 중심에 두는 것이다.
첫 번째는 직무 기반 보상체계 구축이다. 동일한 직급이라도 직무의 중요도와 책임 수준, 시장가치에 따라 보상이 달라질 수 있도록 직무체계와 직무레벨을 정립한다. 이를 위해 직무 프로파일 설계와 직무레벨링 체계를 마련하고, 직무가치에 기반한 보상 기준을 수립하도록 지원한다.
두 번째는 성과와 보상의 연결 강화다. 석유화학 업종은 성과 기반 차등 기본급과 이익공유형 성과급(PS) 구조를 중심으로 기업 성과와 개인 보상을 연결하도록 설계됐다. 바이오 업종은 연구개발 프로젝트와 마일스톤 중심의 성과보상 체계를 반영해 연구개발 특성을 고려했다.
세 번째는 현실적 적용 가능성이다. 많은 중소·중견기업들은 직무분석이나 직무평가, Pay Band 설계 경험이 부족하다. 따라서 이번 모델은 글로벌 기업 수준의 복잡한 제도를 그대로 도입하기보다 실제 기업이 단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직무체계 구축, 직무 프로파일 설계, 직무레벨링, Pay Band 설계, 성과급 운영방안 등 임금체계 개편 전반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함으로써 기업이 보다 체계적으로 제도를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화려함이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가이다.
좋은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 정착이다
많은 HR 제도가 실패하는 이유는 설계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좋은 제도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실제 기업이 이를 운영할 역량과 경험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와 운영기관인 Korn Ferry, 나킴컨설팅이 이번 사업을 단순한 제도 개발이 아닌 '확산 지원사업'으로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먼저 설명회와 공청회를 통해 산업별 임금체계 변화 방향과 표준모델의 핵심 내용을 공유한다. 이를 통해 기업은 최신 HR 트렌드와 정책 방향을 이해하고 자사의 임금체계를 점검할 수 있다. 이어 인사실무자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직무분석, 직무체계 설계, 평가체계 구축, 기본급 및 성과급 설계 등 실무 중심의 교육을 제공한다. 특히 HR 전담 인력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이 실제 활용할 수 있는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확산 네트워크 포럼과 우수사례 공유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를 도입한 기업들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공유하고, 업계 전문가와 실무자가 함께 참여해 현장의 고민과 해결 방안을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예정이다. 관심기업 등록제도 역시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관심기업으로 등록한 기업은 설명회와 교육, 포럼 등에 우선 참여할 수 있으며 업종별 임금체계 관련 자료와 최신 HR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 아울러 Help Desk 운영과 10년 이상 경력을 보유한 HR 컨설턴트의 방문형 코칭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별 상황에 맞는 맞춤형 지원도 제공하고 있다.
이는 결국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제도를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HR의 과제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는 단순한 보상제도 개편이 아니다. 이는 기업이 사람의 가치를 바라보는 기준 자체를 바꾸는 작업에 가깝다. 따라서 HR은 몇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첫째, 우리 조직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직무가치는 무엇인가. 둘째, 어떤 성과를 차별적으로 인정할 것인가.
셋째,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평가와 보상 기준을 갖추고 있는가. 넷째, 직무와 성과 중심 보상이 조직문화와 리더십 운영 방식까지 연결되고 있는가.
직무 중심 보상은 직무체계 없이 운영될 수 없고, 성과 중심 보상은 신뢰받는 평가체계 없이 작동하기 어렵다. 결국 임금체계 개편은 보상제도 하나를 바꾸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HR 시스템 전체를 정렬하는 과정이다.
마치며
산업 환경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AI가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인재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으며, 기업은 과거보다 훨씬 정교한 인재경영을 요구받고 있다.
이제 임금체계는 단순히 급여를 지급하는 제도가 아니다. 조직이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고, 어떤 인재를 확보하고 유지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경영의 언어가 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업종별 임금체계 개선 확산 지원사업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하나의 출발점이다.
직무와 성과를 중심으로 한 보상체계가 확산될수록 기업은 더 공정하게 인재를 평가하고, 구성원은 자신의 기여가 어떻게 인정받는지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결국 미래의 경쟁력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리고 사람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는 보상체계가 그 경쟁력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